
두통이 오면 그냥 참고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응급실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고산병이 그저 '좀 힘든 것' 정도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온 환자를 직접 마주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고산병은 참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고산병의 실체, 급성산악병부터 폐수종까지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에 올라가면 우리 몸은 즉각 반응을 시작합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압이 낮아지고, 그 결과 폐포에 도달하는 산소의 양도 줄어듭니다. 흡입 산소 농도인 FiO₂(Fraction of Inspired Oxygen)는 고도와 무관하게 약 21%로 일정하지만, 저기압 환경에서는 폐포 내 산소 분압이 크게 낮아집니다. 여기서 산소 분압이란 기체 혼합물 속에서 산소 단독이 차지하는 압력을 뜻하는데, 이 수치가 떨어지면 혈액에 녹아드는 산소의 양도 함께 감소합니다.
이 상태를 저산소증이라고 합니다. 저산소증이란 조직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며, 몸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호흡 수를 늘리고 뇌혈관을 확장해 혈류량을 확보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보상 반응이 불완전하거나 과도하게 작동할 때 급성산악병(AMS, Acute Mountain Sickness)이 발생합니다. 급성산악병이란 고지대에 빠르게 노출되었을 때 두통, 구역질, 피로감, 수면 장애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증후군으로, 고산병의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귀국한 40대 남성 환자였습니다. 그는 지속되는 두통과 마른기침을 단순 피로라고 생각해 일주일 가까이 방치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SpO₂(산소포화도)가 80%대까지 떨어져 있었고, 흉부 X-ray에서 고산폐수종(HAPE, High Altitude Pulmonary Edema) 소견이 확인되었습니다. 고산폐수종이란 고지대의 저산소 환경에 반응해 폐 안의 모세혈관에서 체액이 새어 나와 폐포가 물로 채워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나중에 환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참 마음에 걸렸습니다. 현지에서 마른기침과 호흡곤란이 시작됐을 때 "조금만 더 가면 캠프"라는 생각에 하산을 미뤘다고 했습니다. 그 '조금'이 폐에 물을 차게 만든 결정적인 시간이 된 셈이었습니다.
고산병의 단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급성산악병(AMS): 두통, 구역질, 피로감, 수면 장애.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지만 악화의 시작
- 고산뇌수종(HACE, High Altitude Cerebral Edema): 뇌에 부종이 생겨 실조증, 의식 저하 발생. 12시간 내 치료 없으면 혼수상태로 진행 가능
- 고산폐수종(HAPE): 폐에 체액이 차는 가장 위험한 형태. 청색증, 거품 섞인 기침, 안정 시에도 호흡곤란이 나타나며 즉각 하산이 최우선
약 믿고 버티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이유
고산병 예방약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아세타졸아미드(Acetazolamide)입니다. 이 약은 탄산탈수효소 억제제로, 혈액의 pH를 조절해 호흡 중추를 자극하고 고지대 순응을 돕는 작용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등산 1일 전부터 복용을 시작해 하루 2~3회 나눠 먹습니다(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문제는 이 약을 일종의 '면죄부'처럼 여기는 분들이 많다는 겁니다. 등산 커뮤니티에서 "아세타졸아미드 먹고 올라가면 고산병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버젓이 공유되는 걸 보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으로 위험한 오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은 순응을 돕는 보조제일뿐, 이미 발생한 HACE나 HAPE를 치료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이 점을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할 때마다 표정이 굳어지는 걸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더 나아가 고산폐수종이 발생했을 때 치료 원칙은 명확합니다. 즉시 하산 혹은 의료시설로 이동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산소를 4L/min 이상 공급하거나 SpO₂가 90 이상 유지되도록 조절합니다. 하산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니페디핀(Nifedipine)을 투여하거나 고압산소치료를 병행하는데, 고압산소치료란 고압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폐에 공급되는 산소 분압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쉽게 말해 인위적으로 낮은 고도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현장에서 가장 큰 적은 통증이나 증상 자체가 아니라, "내가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과신입니다. 실제로 뇌 혈관이 과도하게 확장되면서 두통이 생기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은 몸이 보내는 명확한 경고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두통약으로 누르고 계속 올라가는 것은, 화재경보기를 끄고 건물 안에 계속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고지대 건강 가이드라인에서도 고산병 예방의 핵심으로 '점진적 고도 적응'을 강조하고 있으며, 하루 300m 이상 상승을 자제하고 순응 기간을 충분히 갖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WHO). 이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제가 봐온 환자들 중 이 원칙을 지킨 분들은 심각한 상태로 내원한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고산지대를 여행하거나 등산을 계획 중이라면 아래 사항만큼은 반드시 기억해두시길 권합니다.
- 두통, 구역질이 시작되면 더 올라가지 말고 같은 고도에서 순응 시간을 가질 것
- 증상이 악화되면 망설이지 말고 즉시 하산할 것
- 아세타졸아미드는 예방 보조제이며, 증상 발생 후에는 하산이 우선임을 기억할 것
- 혼자 등산 시에는 동행자에게 고산병 증상과 대처 방법을 미리 공유할 것
고산병은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고집을 부리다 보면 본인의 생명뿐 아니라 구조대원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하산을 결정하는 용기가 때로는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 응급실에서 직접 겪어보니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지대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충분한 수분 섭취와 금주를 지키고, 조금이라도 이상 신호가 느껴질 때 주저 없이 발걸음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임상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관련 결정은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category=DIS&medid=AA00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