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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배경, 구조 문제, 해결 방향)

by Paramedic0909 2026. 4. 20.

앰블런스 사진

응급차가 병원 문 앞에서 거절당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도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이 '뺑뺑이' 문제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단순히 병원이 냉정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답답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응급실 뺑뺑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됐나

사실 과거에는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구급차가 오면 일단 병원이 받고,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유행 전후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병원들이 "담당 의사가 없다", "지금은 역량이 안 된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 거부가 점점 일상화됐습니다.

법적 근거는 사실 2011년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이송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제도, 즉 병원 전(前) 단계에서 수용 여부를 확인하고 분산하는 시스템이 법에 명시된 것은 그때부터입니다. 여기서 '병원 전 단계'란 구급차가 환자를 싣고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송 중에 이루어지는 모든 처치와 판단을 가리킵니다. 이 제도가 도입된 취지는 응급실 과밀화 해소였습니다. 응급실 과밀화란 한정된 응급실 공간과 인력에 환자가 몰려 정작 중증 환자가 제때 처치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논리는 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중증 질환은 가까운 병원에 들렀다가 다시 전원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심근경색의 경우 중간 경유 시 사망률이 최대 1.5~2배까지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문제는 그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금 완전히 망가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론은 정교한데, 현장은 왜 여전히 뺑뺑이인가

저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매번 느끼는 게 있습니다. 제도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광역 상황실이라는 조직은 이미 있습니다. 광역 상황실이란 각 지역 내 병원들의 수용 가능 여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구급대원에게 이송 병원을 안내해 주는 지역별 통합 조정 센터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구급대원이 직접 병원에 전화를 돌릴 필요 없이, 상황실이 매칭을 해주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응급 처치하면서 동시에 수십 통의 전화를 돌리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증도 분류(triage)라는 절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증도 분류란 환자의 위급함을 빠르게 판별해 치료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으로, 응급 의료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구급대원이 이 판단을 내리면서 동시에 병원 섭외까지 해야 한다면, 둘 다 제대로 되기 어렵습니다.

현재 응급 의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핵심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광역 상황실의 실시간 정보가 불완전해 실제 수용 가능 여부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중증 질환별 순환 당직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특정 시간대에 가용 전문의가 없는 공백이 생깁니다.
  • 구급대원이 이송 매칭과 응급 처치를 동시에 담당하는 구조적 과부하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 병원이 환자를 거부할 경우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와 대응 절차가 여전히 불명확합니다.

전문의 당직 네트워크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칭만 강화해 봤자 병원이 "오늘은 해당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끝입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답답했습니다. 구조적인 인력 공백을 메우지 않고 시스템 정비만 반복하는 것은 빈 그릇을 예쁘게 닦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바꿔야 할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광역 상황실 체계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는데도 뺑뺑이가 줄지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결국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라, 그 시스템이 실제로 돌아가게 하는 인프라와 인력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단순히 가까운 병원이 아닌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직접 이송하는 것이 기본 가이드라인입니다. 이 원칙 자체는 맞습니다. 다만 그 판단을 현장에서 구급대원 혼자 감당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전원(轉院) 조정이란 환자가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더 높은 수준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전원 조정 권한과 책임을 광역 상황실이 명확히 가져가야 합니다(출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방향은 세 가지입니다. 광역 상황실이 실시간 가용 인력 정보를 정확히 보유하는 것, 중증 질환별 순환 당직 체계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 그리고 불가피하게 환자를 일시 수용하는 병원에 대한 법적 보호와 적정 보상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의료진의 사명감에만 기대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응급실 뺑뺑이는 단순히 병원이 냉정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만성적인 의료 인력 부족, 불완전한 정보 시스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구조가 합쳐진 결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급차 안에서 골든타임이 줄어드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NiQE6vSy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