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지 않으면 건강한 걸까요?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 매번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최근 20대, 30대 환자들의 임상 데이터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아무 증상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검진 결과 한 장으로 인생이 뒤집히는 경우, 이제 저에게는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응급실에서 목격한 장 내환경의 붕괴
19살 남성이 두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날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CT에는 이상이 없었는데, 혈압이 220을 넘겼습니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수치를 의심했습니다. 가족력도 없었고, 혈관 기형도 없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중학교를 마치고 공장에 취직해 3년 가까이 가공식품 위주로 식사를 해왔다는 겁니다. 만 2~3년 만에 고혈압성 뇌병증이 찾아온 셈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식습관을 단순한 생활 문제로 보지 않게 됐습니다.
이런 사례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게 더 무섭습니다. 30대 중반 남성이 복통으로 왔을 때, 혈액 검사에서 중성지방 수치가 5,000을 넘겼습니다. 정상 기준은 200 이하, 경고 수준이 500인데 그 열 배가 나온 겁니다. 매일 치킨, 피자,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수치였습니다.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장내장 내 환경의 급격한 붕괴입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gut microbiome)이란 대장 안에 서식하는 수십조 개의 미생물 생태계를 말합니다. 이 생태계가 무너지면 정상 상재균이 사라지고 유해균이 득세하면서 변비, 설사, 만성 염증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장 누출 증후군(leaky gut syndrome)이 문제인데, 이는 장점막의 투과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장 안의 유해균과 독소가 혈류로 직접 흘러 들어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신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결국 대장벽 세포의 DNA 손상과 암 발생률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가공 육류, 과자, 탄산음료 같은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 이 생태계를 가장 빠르게 망가뜨립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이미 하루 섭취 열량의 60% 이상을 초가공식품으로 채우고 있었고(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우리나라도 1인 가구 증가와 배달 문화 확산으로 그 비율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제 주변 또래들만 봐도 편의점 도시락과 배달 앱으로 한 끼를 때우는 날이 주 중 절반을 넘는 경우가 흔합니다.
대사질환이 암으로 가는 경로
대사질환(metabolic disease)이란 혈당, 혈압, 혈중 지질 등 에너지 대사와 관련된 지표들이 만성적으로 비정상 범위에 머무르는 상태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40대 이후의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30대 고혈압, 20대 2형 당뇨는 내과 현장에서 흔한 이야기가 됐습니다.
20대에서 2형 당뇨가 발견되면 예전에는 유전성 1형 당뇨를 먼저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식습관과 운동 부족으로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이 생겨 발생하는 2형 당뇨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임상 현장의 중론입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세포가 인슐린 신호에 둔감해져 혈당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혈당과 중성지방이 혈중에 쌓이고, 이것이 혈관 염증을 일으키며 암세포 증식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스트레스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교감 신경이 과항진되면 면역계로 가는 혈류가 줄어듭니다. 여기서 교감 신경 과항진이란 몸이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소화 기능과 면역 기능을 일시 차단하고 심폐 기능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반응입니다. 이 상태가 만성화되면 NK세포(자연살해세포)와 T세포처럼 암세포를 탐지하고 제거하는 면역 세포의 활성이 떨어집니다. 가족을 잃거나 사업에 크게 실패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암이 발견되는 사례가 임상에서 드물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건강 검진에서 다음 항목이 하나라도 걸린다면, 저는 그걸 경고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공복 혈당 100mg/dL 이상 또는 당화혈색소(HbA1c) 5.7% 이상
- 중성지방 150mg/dL 이상
- 혈압 130/85mmHg 이상
- 체지방률 남성 25%, 여성 30% 초과
- 지방간 초기 소견
이 중 하나가 보인다면 5년, 15년 뒤의 암 발병 환경이 지금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출처: 국립암센터).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생활습관
"포케를 먹고 계단을 오르라"는 말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시각도 이해합니다. 1인 가구에 고물가 환경에서 신선 채소를 챙겨 먹기란 구조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저도 강연 자리에서 처음 포케를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리밥 위에 채소와 두부, 연어를 얹은 그 구성이 배달 음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혼밥을 해야 할 때 근처 포케집을 먼저 찾아봅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젊은 세대의 건강 악화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돌리는 건 문제의 본질을 흐립니다. 건강한 식사를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보를 전달해도 현장에서는 공허하게 들립니다. 식품 산업의 규제와 노동 환경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가 직접 현장에서 환자를 보면서 더욱 강하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이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맞습니다. 배달을 시키더라도 튀긴 것보다는 찐 것, 구운 것 위주로 고르는 것.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3층까지만 걷는 것. 하루 7시간 수면을 지키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이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비 암 환자입니다. 암세포는 매일 우리 몸 안에서 생겨나고, 면역계가 그것을 잡아내면서 살아갑니다. 지금 통증이 없다는 건 면역계가 아직 버티고 있다는 뜻이지, 몸이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저녁 식사 하나를 바꾸는 것, 그것이 5년 뒤의 내 몸을 바꾸는 시작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임상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진단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에 이상이 느껴지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